자(字)는 인보(引甫), 호(號)는 격재(格齋), 초호(初號)는 면재(勉齋), 현감(縣監) 관(寬)의 아들. 학문과 시문(詩文)의 대가로서 김종직(金宗直)과 친교가 있었고,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등의 제자를 두었다. 1435년(세종 17)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검열(檢閱)을 지내고 집현전(集賢殿)에 보직, 봉산 군수(鳳山郡守)에 이르렀다. 1456년(세조 2) 단종(端宗)의 복위를 꾀하던 성상문(成三問) 등이 살해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隱居),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대구(大邱)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