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3 16:15
1287년(충렬왕 13) ~ 1379년(우왕 5) 시호(諡號)는 정평(靖平). 충선왕 때 문과(文科)에 급제, 충숙(忠肅)․충혜(忠惠) 양조에 벼슬하고, 1348년(충목왕 4) 첨의평리(僉議評理)로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1349년(충정왕 1) 추성보절좌리공신(推誠保節佐理功臣)에 도첨의 찬성사(都僉議贊成事)가 되었고, 이해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올랐으며, 이듬해 복주부원군(福州府院君)으로 봉해지고, 1351년 치사(致仕)했다.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紅巾賊)의 난으로 복주(福州)에 피란하는 왕(王)을 중도에서 평복으로 맞아 치하를 받았고, 1364년 난의 평정을 축하하러 서울에 갔다가 왕으로부터 궤장(几杖)과 자기 초상화를 받았으며, 돌아올 때 이제현(李齊賢)․이 색(李 穡) 등 학자들이 시를 지어 전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