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3 14:22
1813년(순조 13) ~ 1893년(고종 30). 자(字)는 치평(穉平), 호(號)는 한산(漢山), 참판(參判) 홍보(鴻輔)의 아들. 예조 참판(禮曹參判) 장보(長輔)에게 입후(入後). 1843년(헌종 9) 진사에 합격, 음사(蔭仕)로 여러 관직을 거쳐 6품에 이르렀다.
1854년(철종 5)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동부승지(同副承旨)․공조 참의(工曹參議)․대사성(大司成)․도승지(都承旨)을 역임하고 1860년(철종 11) 호․병조참판(戶․兵曹參判)과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거쳐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지낸 후 1863년(철종 14) 공조 판서(工曹判書)․한성 판윤(漢城判尹)을 지냈다.
다음해에 사은정사(謝恩正使)로 청나라에 갔다 와서 예조․형조 판서(禮曹․刑曹判書)와 지의금부사(知義禁府使) 등을 역임하고, 1869년(고종 6) 개성 유수(開城留守)가 되어 빈민들의 누적(累積)된 환상곡(還上穀)을 탕감(湯減)하고 많은 선정을 하였다. 1892년(고종 29) 숭록대부(崇祿大夫)․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판돈령 부사(判敦寧府事)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