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3 13:50
1725년(영조 1) ~ 1779년(정조 3). 자(字)는 사의(士毅), 호(號)는 직재(直齋), 현령(縣令) 명훈(命勳)의 아들. 김원행(金元行), 이 재(李 縡)의 문인. 1751년(영조 27)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중망(重望)이 있어 신 만(申 晩)․홍계희(洪啓禧) 등 요인(要人)들로부터 교유를 원해 온 것을 거절, 이 때문에 오랫동안 벼슬길이 침체했으며 1757년(영조 33) 정언(正言)으로서 윤시동(尹蓍東)을 신구(伸救)했다가 당쟁(黨爭)을 일삼는다하여 흑산도(黑山島)에 유배, 1763년 풀려 나왔다.
1767년 교리(校理)가 되어 척신(戚臣)의 자제가 너무 많이 대과(大科)에 급제되는 폐단을 직언(直言)하고 예조 참의(禮曹參議)로 특진되었다. 1772년 벽파(僻派)를 탄핵했다가 서인(庶人)이 되어 회양부(淮陽府)에 쫓겨났다.
뒤에 등용되어 1776년 정조(正祖)가 즉위하자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공조 참의(工曹參議)을 거쳐 이듬해 승지(承旨)․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