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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씨] 서명응(徐命膺)

작성일 : 2017-10-23 13:45

1716(숙종 42) 1787(정조 11). ()는 군수(君受), ()는 보만재(保晩齋)․담옹(澹翁), 시호(諡號)는 문정(文靖), 이조 판서 종옥(宗玉)의 아들. 1754(영조 30)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정언(正言)․부수찬(副修撰)․헌납(獻納)․부응교(副應敎)을 지내고, 이듬해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1759년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고, 이듬해 대사간(大司諫)․대사헌(大司憲)을 거쳐 1761년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전직되었다가 이듬해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 나갔다.

1763(영조 39) 우승지(右承旨)을 거쳐 예조 참판(禮曹參判), 이어 대사헌(大司憲)․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를 역임, 1769년 충청도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로 나갔다가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에 올랐다.

다음해 형조 판서(刑曹判書)․지경연사(知經筵事)․이조․호조․병조의 판서(判書)를 역임, 1777(정조 1) 규장각 제학(奎章閣提學)․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을 역임했다. 다음해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을 거쳐 1779(정조 3) 수어사(守禦使)가 되고, 이듬해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역학(易學)을 두루 섭렵하고 실학(實學) 연구에 전심한 북학파(北學派)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며 학자(學者)로서 명망이 높았고, 영조(英祖) 때 왕명으로 악보를 수집, 집대성하여 간행했으며 그의 유고집은 왕이 특히 내탕금(內帑金)을 하사하여 발간케 했다. 글씨에도 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