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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씨] 서문중(徐文重)

작성일 : 2017-10-23 13:33

1634(인조 12) 1709(숙종 35). ()는 도윤(道潤), ()는 몽어정(夢漁亭), 시호(諡號)는 공숙(恭肅), 부사(府使) 정리(貞履)의 아들. 원리(元履)에게 입양(入養). 1657(효종 8)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673(현종 14) 학행(學行)으로 추천을 받아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다. 1680(숙종 6) 상주 목사(尙州牧使)에 이르러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 이듬해에 광주 부윤(廣州府尹)에 발탁되었다. 이어 승지(承旨),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어영 대장(御營大將)․예조 참판(禮曹參判) 겸 비변사 당상(備邊司堂上)․공조 참판(工曹參判) 등을 거쳐 1687년 형조판서(刑曹判書) 겸 종묘(宗廟)․빙고(氷庫)의 제조(提調)를 지내고, 이듬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을 거쳐 우참찬(右參贊)이 되었다.

1689(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노론(老論)의 중신(重臣)으로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반대한 뒤 금천(衿川)에 퇴거했다. 이듬해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경주 부윤(慶州府尹)․안변 부사(安邊府使) 등을 역임했다. 1694(숙종 20)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병조 판서(兵曹判書) 겸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에 등용, 선혜청 당상(宣惠廳堂上)에 올랐으나 이때 장희빈(張禧嬪) 및 기사환국의 주동자들을 징계함에 있어 온건론을 주장하다가 탄핵을 받고 다시 금천에 은퇴, 후에 좌의정(左義政) 박세채(朴世采)의 노력으로 기용되어 1696년 훈련원 대장(訓鍊院大將)․형조 판서(刑曹判書)․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역임했다. 1698년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청나라에 갔으며, 1699년 좌의정, 이듬해 영의정(領義政)에 올라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어 죽었다. 평생 독서에 힘써서 역대의 사적(事蹟)에 정통했으며, 저서도 많이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