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찾기

조상찾기

HOME > 조상찾기

[대구서씨] 서성(徐 渻)

작성일 : 2017-10-23 13:26

1558(명종 13) 1631(인조 9). ()는 현기(玄紀), ()는 약봉(藥峯), 시호(諡號)는 충숙(忠肅), ()의 아들. 이 이(李 珥), 송익필(宋翼弼)의 문인. 1586(선조 19)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병조좌랑(兵曹佐郞)이 되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扈從), 호소사(號召使) 황정욱(黃廷彧)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함북에 이르러 황정욱 등이 두 왕자와 함께 적의 포로가 될 때 홀로 탈출했다. 왕의 명령으로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병조 정랑(丙曹正郞), 직강(直講)이 되고, 명장(明將) 유 정(劉 綎)을 접대했다.

그후 암행어사(暗行御史)로서 삼남(三南)을 순찰, 돌아와 제용감정(濟用監正)에 특진되고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경기도의 관찰사(觀察使)를 역임, 후에 호조, 형조, 공조의 판서(判書)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을 지냈다.

1613(광해군 5) 계축옥사(癸丑獄事)에 연루되어 11년간 유배(流配)되었다가 1623년 인조반정(仁조反正)으로 형조와 병조의 판서가 되었고, 1624년의 이 괄(李 适)의 난과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에 각각 인조(仁조)를 호종(扈從)했다. 학문을 즐겨 이인기(李麟奇), 이호민(李好閔), 이 귀(李 貴) 등과 남지 기로회(南池耆老會)를 조직, 역학(易學)을 토론했으며 서화(書畵)에도 뛰어났다. 대구의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祭享),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