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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성씨] 성기운(成岐運)

작성일 : 2017-08-29 14:19

1847 (헌종 13) ()는 봉서(鳳瑞), 의익(義益)의 아들. 1880(고종 17)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승정원 가주서(承政院假注書)․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를 지내고, 1884(고종 21) 주천진 서기관(駐天津書記官), 이듬해 수찬(修撰)에 승진, 양성현감(陽城縣監)․동부승지(同副承旨)․형조 참의(刑曹參議)․전환국 총판(典圜局總辦) 등을 역임했다.

1890(고종 27) 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 1892년 전환국 겸 교환서 총판(典圜局兼交換署總辦)을 역임, 1893(고종 30) 중국 상해 찰리통상사무(上海察理通商事務)에 보직되었고, 이듬해 궁내부 참의(宮內府參議)․농상공부 협판(農商工部協辦)․우승지(右承旨)을 지냈다. 이해 동학혁명(東學革命)이 일어나자 영의정 김병시(金炳始)의 명으로 청나라 원세개(袁世凱)에 진압군 파견을 요청, 청군을 끌어들였다.

1896(건양 1)에 궁내부회계원경(宮內府會計院卿), 1900(광무 4) 철도 감독(鐵道監督)․참찬(參贊)을 지내고, 이해 주일 공사(駐日公使), 이듬해 궁내부 협판(宮內部協辦), 1902년에 찬정(贊政)․철도원총재(鐵道院總裁) 등을 역임했다. 1904년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이듬해 충청북도 관찰사(忠淸北道觀察使), 1906년 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를 거쳐 농상공부 대신(農商工部大臣), 이듬해 중추원부의장(中樞院副議長)․장례원경(掌禮院卿)을 지냈다. 훈일등팔괘장(勳一等八卦章)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