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4:12
1647 (인조 25) ~ 1741 (영조 17) 자(字)는 중일(仲一), 호(號)는 명탄(明灘)․원당(圓塘), 고려의 시중(侍中) 여완(汝完)의 후손. 송시열(宋時烈)의 문인.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유학(幼學)으로 많은 선비들을 이끌고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廢位)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시골로 쫓겨 갔다.
1694년 앞서 갑술옥사(甲戌獄事) 때 폐위되었던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선공감 감역(繕工監監役)이 되고, 1696년(숙종 22) 이현명(李顯命)의 상소문(上疏文)을 대서(代書)했다하여 진도(珍島)에 유배, 2년만에 풀려 나왔다.
그후 평시서 봉사(平市署奉事)․한성부 참군(漢城府參軍)을 역임하고, 1705년 남구만(南九萬)․류상운(柳尙運)을 신구(伸救)하려던 상소로 인하여 정언(正言) 이명준(李明俊)의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자 수춘산(壽春山)에 들어갔다.
1726년(영조 2)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에 임명되자 시국의 당면 과제 7조(條)를 건의했고, 1736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온갖 기예(技藝)에 능통했고, 글씨도 잘썼다. 춘천(春川)의 곡운서원(谷雲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