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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성씨] 성호징(成虎徵)

작성일 : 2017-08-29 14:11

1625 (인조 3) 1694 (숙종 20)  ()는 병여(炳如),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使) 운한(雲翰)의 아들. 1666(현종 7)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고, 지평(持平)․장령(掌令)을 거쳐 정언(正言)이 되어 대사헌(大司憲) 민정중(閔鼎重)이 병으로 영릉(寧陵)의 봉천(奉遷)에 참석하지 못한 죄로 사직된 것을 논구(論救)하다가 1673(현종 14) 강계(江界)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 나왔으나 윤 휴(尹 鑴) 등 남인(南人)과 뜻이 맞지 않아 두문불출(杜門不出), 1680(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이 쫓겨나자 정언(正言)로 복직, 이어 지평(持平)․장령(掌令)을 거쳐 죽산 부사(竹山府使)이 되었다.

1684년 사간(司諫)이 되어, 허 목(許 穆)의 복관(復官)이 부당함을 극론하다가 집의(執義)로 전직, 그뒤 좌승지(左承旨)이 되었다. 1688년 여주 목사(驪州牧使)로 나갔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에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가 폐위되자 두문불출, 1694(숙종 20)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남인이 다시 실각하자 판결사(判決事)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