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4:03
1574 (선조 7) ~ 1633 (인조 11) 자(字)는 덕보(德甫), 호(號)는 장곡(藏谷), 부제학(副提學) 이문(以文)의 아들. 1599년(선조32)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설서(設書)를 거쳐 수찬(修撰)․교리(校理)․이조정랑(吏曹正郞)․사인(舍人)․부응교(副應敎) 등을 역임했다.
1608년 광해군(光海君)이 즉위하자 이이첨(李爾瞻) 등의 모함으로 남해(南海)에 유배되었다가 이산(理山)․양산(梁山) 등지로 이배(移配)되어 16년간이나 귀양살이를 했다.
인조반정(仁祖反正 : 1623) 이후 청송 부사(靑松府使)․재령 군수 (載寧郡守)을 거쳐 서천 군수(舒川郡守)이 되었다가 이듬해 이 괄(李 适)의 난이 일어나자 부안(扶安)에서 의병(義兵)을 규합, 행재소(行在所)에 가서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이어 선천 부사(宣川府使)이 되어 양서(兩西)의 관향사(管餉使) 및 찬획사(贊획使)를 겸했고,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하자 명나라 장군 모문룡(毛文龍)에게 양곡을 얻어 구휼(救恤),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졌다.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판결사(判決事) 등을 거쳐 안동 부사(安東府使)이 되었다. 좌찬성(左贊成)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