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4:03
1573 (선조 6) ~ 1645 (인조 23) 자(字)는 이건(而建), 참판 수익(壽益)의 손자. 1603년(선조 36) 무과(武科)에 급제, 광해군(光海君) 때 대정 현감(大靜縣監)을 지내고, 1624년(인조 2) 이 괄(李 适)의 난 때 잡혀온 적도들을 함부로 죽이려 함을 강력히 반대, 이를 중지케 했다.
형조 좌랑(刑曹佐郞)․군기시 첨정(軍器寺僉正)․훈련원 부정(訓鍊院副正)․갑산 부사(甲山府使)․길주 목사(吉州牧使)․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를 지내고 강계 부사(江界府使)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1636년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고 창흥군(昌興君)에 봉해졌으며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이 되었다.
이해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전라도 수군절도사(全羅道水軍節度使)가 되어 급히 강화도(江華島)에 수군을 이끌고 갔으나 이미 항복한 후였다.
이어 늦게 도착한 책임을 지고 제주 목사(濟州牧使)로 좌천되었다. 그후 오랑캐들이 계속 북변에서 약탈을 자행하자 특히 함경북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그들을 몰아냈다. 경성(鏡城)의 청덕사(淸德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