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4:01
1571 (선조 4) ~ 1623 (인조 1) 자(字)는 자수(自受), 수군절도사 박(鎛)의 아들. 1590년(선조 23) 무과(武科)에 급제, 1592년 임진왜란 때 선전관(宣傳官)으로 왕을 호종(扈從), 1599년 공조 좌랑(工曹佐郞)․의주 판관(義州判官)을 역임, 1604년 자금은주자(紫金銀冑子)를 하사받았다.
이해 북도 우후(北道虞侯)가 되어 북변에 침입한 야인을 쳐 전공을 세웠고, 1606년 전라도 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훈련원도정(訓鍊院都正)․안변 부사(安邊府使), 이듬해 길주 목사(吉州牧使)에 전직, 1613년(광해군 5) 서로 방어사(西路防禦使), 1618년 함경도 순변사(咸鏡道巡邊使), 평안도 병마절도사(平安道兵馬節度使)를 역임, 1620년에 호조 판서(戶曹判書)가 되었다.
1622년 함경남도 병마절도사로 있을 때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이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가담할 것을 권고했으나 이를 거절,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1623년(인조1) 황 현(黃 玹)의 역모(逆謀) 사건에 연루, 장살(杖殺)되었으나, 이듬해 이 귀(李 貴)의 상소로 복관(復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