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3:14
1528 (중종 23) ~ 1598 (선조 31) 자(字)는 덕구(德久), 호(號)는 칠봉(七峰), 장흥고령(長興庫令) 예원(禮元)의 아들. 1552년(명종 7) 생원(生員)이 되고, 경릉 참봉(敬陵參奉)․돈령부 봉사(敦寧府奉事)를 역임, 1559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어천도찰방(魚川道察訪)․회양 부사(淮陽府使) 등을 거쳐 예조 참판(禮曹參判)이 되었다.
일찍이 개성부 경력(開城府經歷)으로 있을 때, 정몽주(鄭夢周)의 옛 집터에 사당을 세우고 서경덕(徐敬德)을 함께 제향(祭享)했다. 또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갔을 때는 예부(禮部)를 통해 종계변무(宗系辨誣)를 했고, 1590년(선조 23)에 광국 원종공신(光國原從功臣)이 되었다.
1595년 창산군(昌山君)에 봉해졌으며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가 되었고,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에 부총관(副摠菅)으로 왕비를 수안(遂安)에 호종, 과로로 병을 얻어 이듬해 해주(海州)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