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3:10
1506 (중종 1) ~ 1583 (선조 16) 자(字)는 중회(仲晦), 호(號)는 사암(思菴), 희문(希文)의 아들. 희공(希恭)에게 입양(入養). 김안국(金安國)의 문인. 1540년(중종35) 진사(進士)로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1544년 헌납(獻納)이 되고, 1545년(인종 1) 지평(持平), 이듬해 부교리(副校理)․수찬(修撰)․검상(檢詳) 등을 지냈다.
그후 사도시정(司導시正)으로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을 겸직, 「중종실록(中宗實錄)」․「인종실록(仁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1548년 사인(舍人)․집의(執義)․경기도 암행어사(京畿道暗行御史) 이어서 응교(應敎)․사간(司諫)․도승지(都承旨)을 거쳐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참찬관(參贊官)을 겸직, 2년간 승정원(承政院)의 여러 승지(承旨)을 지낸 후 1553년 호조 참판(戶曹參判)이 되었다.
다음해 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 1557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부제학(副提學), 이어 대제학(大提學)․공조 참판(工曹參判)․대사간(大司諫)․병조 참판(兵曹參判) 등을 지내고, 1563년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 1565년 형조 참판(刑曹參判), 1567년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지냈다.
이듬해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역임, 1573년(선조 6)에 등극부사(登極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예조와 호조의 판서(判書)에 이어 우참찬(右參贊)이 되었다. 1576년 다시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지냈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