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2:20
1493 (성종 24) ~ 1564 (명종 19) 자(字)는 중옥(仲玉), 호(號)는 청송(聽松), 죽우당(竹雨堂)․파산청은(坡山淸隱)․우계한민(牛溪閒民), 시호(諡號)는 문정(文貞), 대사헌 세순(世純)의 아들, 우계(牛溪) 혼(渾)의 아버지. 조광조(趙光祖)의 문인. 1519년(중종14)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스승 조광조가 처형되고 많은 선비들이 화를 당하자 벼슬길을 단념하고 두문불출, 「대학(大學)」․「논어(論語)」를 읽으며 「태극도(太極圖) 」를 베껴 조화(造化)의 근본을 탐구했다.
그후 후릉 참봉(厚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파주(坡州) 우계(牛溪)의 처가(妻家) 근처에 은거, 1552년(명종7) 내자시 주부(內資寺主溥)․예산 현감(禮山縣監)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했으며, 다시 토산(兎山)․적성(積城) 등의 현감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취임하지 않았다.
글씨를 잘 써서 이름이 높았으며, 문하(門下)에서 많은 석학(碩學)이 배출되었다. 좌의정(左議政)에 추증(追贈), 파주의 파산서원(坡山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