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2:16
1474 (성종 5) ~ 1504 (연산군 10) 자(字)는 계문(季文), 호(號)는 청호(晴湖), 좌찬성 억(抑)의 후손. 어려서부터 시문(詩文)에 뛰어났고, 생원(生員)․진사(進士)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할 때는 하루에 시 30여편을 지어 함께 공부하던 김일손(金馹孫)․조 위(曺 偉) 등을 놀라게 하였다.
1494년(성종25)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1497년(연산군3) 홍문관 저작(弘文館著作)으로 승진된 후 박사(博士) 벼슬에 이르러 경연사경(經筵司經) 및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하여 「성종실록(成宗 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경연관으로서 명현들의 무고한 화를 변호하다가 인산(麟山)에 유배되었다. 그후 1500년 하동(河東)으로 이배(移配)되었다가,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과거 홍문관(弘文館)에 있을 때 왕의 후원관사(後苑觀射)를 논계(論啓)했던 죄로 월배(越配)된 후 능지처참(陵遲處斬)당했다. 부안(扶安)이 도동서원(道東書院), 창녕이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