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2:08
1436 (세종 18) ~ 1504 (연산군 10) 자(字)는 시좌(時佐), 시호(諡號)는 명숙(明肅), 참판(參判) 순조(順祖)의 아들. 1456년(세조 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45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1469년(예종 1) 필선(弼善)․사섬시 첨정(司贍寺僉正)을 지내고 대사간이 되었으며, 1485년(성종 16)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이듬해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로 임명되었다.
1488년(성종 19) 대사헌(大司憲)․이조 판서(吏曹判書)를 거쳐 우참찬(右參贊)이 되고, 1490년(성종 21)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영안북도 절도사(永安北道節度使)로 나가 북정 부원수(北征副元帥)로서 도내에 쳐들어 온 야인(野人)을 정벌했다.
1495년(연산군 1)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거쳐 우찬성(右贊成)이 되고, 1498년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이듬해 삼수군(三水郡)에 야인(野人)들이 침범하자 서정 장수(西征將帥)가 되고, 1500년(연산군 6) 좌의정에 올라 영의정(領議政) 한치형(韓致亨), 우의정 이극균(李克均)과 함께 시폐 십조(時幣十條)를 주청, 연산군의 난정(亂政)을 바로잡으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1503년 영의정에 올라 세자사(世子師)를 겸했으나 이듬해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앞서 성종 비의 폐위(廢位)와 사사(賜死)에 관여한 죄로 직산(稷山)에 유배, 이어 배소(配所)에서 잡혀와 교살(絞殺)되었다. 중종 때 복관(復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