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2:04
? ~ 1456 (세조 2) 자(字)는 미수(眉叟), 호(號)는 인재(仁齋)․문두(文斗), 시호(諡號)는 정숙(靖肅), 승문원 교리(承文院校理) 희(熺)의 아들, 성삼문(成三問)과는 재종간(再從間). 1450년(세종 32) 진사(進士)가 되고,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 등을 역임했다.
단종복위(端宗復位) 사건에 성삼문(成三問) 등이 처형되자 이에 연좌하여 심한 고문 끝에 김해(金海)로 유배되었다가 3년 후 풀려 나와 벼슬을 단념하고 선영(先塋)이 있는 파주 문두리(坡州文斗里)에 은거했다. 일생을 독서와 낚시질로 소일했으며, 죽은 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불리었다. 함안(咸安)의 서산서원(西山書院), 창녕(昌寧)의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제향(祭享),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