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2:00
? ~ 1456 (세조 2) 호(號)는 적곡(赤谷), 시호(諡號)는 충숙(忠肅), 사육신 삼문(三問)의 아버지. 무과(武科)에 급제, 1440년(세종 22) 경상도 병마절제사(慶尙道兵馬節制使), 1466년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이 되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51년(문종 즉위) 정조 부사(正朝副使)로 또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했다.
1453년(단종 1) 의주 목사(義州牧使), 1455년(세조 1)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가 되고, 이듬해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취임하지 않았다.
이해 왕의 고명(誥命)을 가져온 명나라 사신의 송별연이 창덕궁(昌德宮)에서 개최될 때 도총관(都摠管) 유응부(兪應孚)와 함께 운검(雲儉)을 쥐게 되는 기회에 세조를 칼로 베고 상왕 단종의 복위를 계획, 아들 삼문 등과 거사를 도모했다.
그러나 갑자기 자리가 비좁다고 운검을 그만두라는 세조의 명이 내림으로써 거사가 어렵게 되자 삼 문․박팽년 등의 주장을 따라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그러나 김 질(金 礩)의 밀고로 복위 음모가 발각되어 사형되었다. 숙종(肅宗) 때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 홍주(洪州)의 노운서원(魯雲書院), 창녕의 관산서원(冠山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