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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성씨] 성달생(成達生)

작성일 : 2017-08-29 11:55

1376 (우왕 2) 1444 (세종 26)  ()는 효백(孝伯), 시호(諡號)는 양혜(襄惠), 유후(留後) 석용(石瑢)의 아들. 1390(공양왕 2) 생원(生員)이 되고, 음보(蔭補)로 낭장(郎將)이 되었다. 태종(太宗)의 잠저(潛邸) 때부터 총애를 받았고 그가 세자에 책봉되자 그의 추천으로 호군(護軍)에 승진했다.

1402(태종 2) 처음으로 시행된 무과(武科)에 장원, 대호군(大護軍)에 특진되고, 흥덕진 병마사(興德鎭兵馬使)가 되었다. 1408년 왜구(倭寇)가 변경에 침입하자 이를 격퇴했고 1410년 무과중시(武科重試)2등으로 급제, 판예빈사사(判禮賓寺事)에 올랐다.

1413년 판성주목사(判星州牧使)․경성 절제사(鏡城節制使)를 역임하고, 1416(태종 16) 중군 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전라도 관찰사(全羅道館察使) 겸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에 승진, 1418(태종18) 삼번 절제사(三番節制使)․도총사(都摠使)․별운검(別雲劒)․함길도 병마절도사(咸吉道兵馬節度使) 겸 판길주 목사(判吉州牧使) 등을 거쳐 이듬해 중군 총제(中軍摠制)․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1420(세종 2) 경상우도 수군도안무처치사(慶尙右道水軍都按撫處置使)․경상우도 병마절제사(慶尙右道兵馬節制使)를 겸직했다.

1422년 좌군 총제․평안도 관찰사에 전직되고, 1425년 평안도 도절제사로 황주 선위사(黃州宣慰使)를 겸직, 1427년 공조 판서, 이어 도총제(都摠制)․함길도 병마도절제사(咸吉道兵馬都節制使)․영길주목사(領吉州牧使) 등을 지냈다. 1435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1440년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가 되었다. 서찰(書札)을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