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1:49
1338 (충숙왕 복위 7) ~ 1423 (세종 5) 자(字)는 자수(自修), 호(號)는 독곡(獨谷), 시호(諡號)는 문경(文景), 부원군 여완(汝完)의 아들. 1357년(공민왕 6)에 문과(文科)에 급제, 학유(學諭)․직사관(直史館)․삼사 도사(三司都司)․전의 주부(典議主簿)․전리 좌랑(典理佐郞)․전교 부령(典校副令)․전리 총랑(典 理摠郞)을 지낸 후 신 돈(辛 旽)에 아부하지 않아 해주 목사(海州牧使)로 나갔다가 다시 불리어 성균사성(成均司成)이 되고, 밀직대언(密直代言)․지신사(知申事)에 올랐다.
1384년(우왕 10) 밀직제학(密直提學)으로 있을 때 왜구(倭寇)가 승천부(昇天府)에 쳐들어오자, 조전원수(助戰元帥)로서 원수 양백연(楊伯淵)과 함께 출전하여 적을 격퇴하고 수성좌리공신(輸誠佐理功臣)이 되었으며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올랐다.
양백연의 옥사(獄事)에 연루, 함안(咸安)의 수졸(戍卒)로 충군(充軍)되었다가 풀리어 창원군(昌原君)에 봉해졌다. 그후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어 양광도 도관찰출척사(楊廣道觀察黜陟使)가 되고, 이때 의창(義倉)의 설립을 건의하여 각 도에 의창을 설치케 했다.
이어 문하평리 겸 대사헌(門下評理兼大司憲)이 되었고 이성계(李成桂) 등과 함게 우왕에 뒤이어 창왕을 폐하고 공민왕을 세워 그 공으로 찬화공신(贊化功臣)에 창성군(昌城君)에 봉해졌으며,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올랐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이 색(李 穡)․우현보(禹玄寶)의 일당으로 한때 추방, 문하시랑 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을 거쳐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을 역임, 1399년(정종 1)에 서북면도순찰사(西北面都巡察使)․평양 부윤(平襄府尹)을 거쳐 문하 우정승(門下右政丞)이 되고 창녕백(昌寧伯)에 봉해졌으며 좌정승에 올랐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左命功臣) 3등으로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에 진봉(進封)되고, 1415년 영의정(領議政)이 되었다. 시사(詩詞)에 뛰어났고 초서(草書)를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