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1:47
1309 (충선왕 1) ~ 1397 (태조 6) 호(號)는 이헌(怡軒), 시호(諡號)는 문정(文靖), 판도 총랑(版圖摠郞) 군미(君美)의 아들. 1336년(충숙왕 5) 문과(文科)에 급제, 예문춘추검열(藝文春秋檢閱)을 거쳐 군부 정랑(軍簿正郞)이 되어 양광도(楊廣道)를 안렴(按廉)하고 상서 우승(尙書右丞)․지형부사(知刑部事)․어사중승(御史中丞)․전법 판사(典法判事)를 지냈다.
그후 해주(海州)․충주(忠州)의 목사(牧使)을 역임하고 공민왕 때 민부 상서(民部尙書)를 거쳐 우왕(禑王) 때 정당문학상의(政堂文學商議)에 이르러 창녕부원군에 봉해졌다.
1392년(태조 1) 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되자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졌음을 알고 포천(抱川) 왕방산(王方山)에 들어가 은거했다. 조선 개국 후에 노인직(老人職)으로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로 봉해졌으나 사퇴하고 절개를 지켰다. 창녕의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