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8 16:46
1341년(충혜왕 복위 2) ~ 1399년(정종 1). 자(字)는 천민(天民), 호(號)는 운재(芸齋), 시호(諡號)는 문량(文良), 부원후(富原侯) 손(遜)의 아들. 본래 위그르 사람으로 1359년(공민왕 8) 아버지를 따라 귀화했다. 1362년 문과(文科)에 급제,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를 거쳐 밀직사 제학(密直司提學)을 역임, 완성군(完城君)에 봉해지고 추성보리공신(推誠輔理功臣)에 책록(策錄)되었다. 1387년(우왕 13)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1389년(창왕 즉위)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우왕(禑王) 손위(遜位)의 표문(表文)을 가지고 명나라에 다녀왔다. 1390년(공양왕 2) 충의군(忠義君)에 봉해지고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승진, 이듬해 정난공신(定難功臣)으로 추록(追錄)되고, 1392년 판삼사사(判三司事)로서 지공거(知貢擧)를 겸했다. 이해 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될 때 그 일당으로 몰려 해도(海島)에 유배되었으나 조선 초 태조(太祖)에 의해 등용되어 1396년(태조 5)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복직, 계림(鷄林 : 경주)을 본관으로 하사받았고 연산부원군(燕山府院君)에 봉해졌다.
1398년에 정종(定宗)이 즉위하자 계품사(計稟使)로 명나라에 가던 도중 명나라 황제가 죽었으므로 진향사(進香使)로 사명이 바뀌어 북경(北京)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했다. 전후 8차례나 사신으로 명나라에 왕래했고, 시(詩)와 글씨에도 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