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8 15:50
1896 (건양 1) ~ 1936 전북 정읍(井邑) 출신. 빈한한 농가에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사서(四書)에 통달하고 정치적 식견도 높았다. 19세에 상경, 마침 3․1 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과 전단(傳單)을 가지고 귀향, 항일운동을 벌였다.
그후 동지들을 규합, 경인간(京仁間)의 일본 군사시설의 파괴를 공작하다가 탄로되어 본정(本町) 경찰서에 구금되었으나 교묘히 본적지와 행적(行跡)을 속여 방면되었다. 계속 경향 각지(京鄕各地)를 잠행(潛行)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북경(北京)으로 망명하여 일제의 군사시설을 파괴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1924년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고 도오꾜오에 갔으나 탄로되어 실패, 북경으로 돌아왔다. 1925년 상해로 내려가 무정부주의자 연맹에 가입, 농민운동에 투신하였고, 1928년에 남경(南京)에서 개최된 동방무정부주의자 연맹(東方無政府主義者聯盟)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1933년 3월 17일 이강훈(李康勳)․이원훈(李元勳) 등과 함께 상해홍구(虹口)에서 주중 일본 대사(駐中日本大使) 아리요시(有吉)를 암살하려고 밀모(密謀)하다가 발각되어 피체, 나가사끼(長崎) 재판소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옥사(獄死)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單章)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