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5 14:42
1493 (성종 24) ~ 1564 (명종 19) 자(字)는 기부(起夫), 호(號)는 송현(松峴)․ 범허재(泛虛齋)․향일당(響日堂), 시호(諡號)는 성안(成安), 찰방(察訪) 보(甫)의 아들.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사관(史官)으로 뽑히고, 1526년 예조 좌랑(禮曹佐郞)으로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28년 필선(弼善)이 된 뒤에 장령(掌令)․문학(文學)․승문원 교리(承文院校理)를 거쳐 집의(執義)․응교(應敎)을 지내고, 1533년 사간(司諫)․부제학(副提學)․대사간(大司諫)에 올랐다.
1535년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고, 1537년 형조 참판(刑曹參判), 이듬해 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대사헌(大司憲)․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호조와 병조의 판서(判書), 1543년 공조 판서(工曹判書) 우찬성(右찬成)․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를 역임, 이듬해 중종(中宗)이 죽자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로「중종실록(中宗實錄) 」의 편찬에 참여했다.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서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했고, 1545년(인종 1)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을 지냈다.
이듬해 명종(明宗)이 즉위하자 다시 우찬성(右찬成)에 보직,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거쳐 우의정(右議政)이 되고, 1551년(명종 6)에 좌의정(左議政), 1558년 영의정(領義政)이 되었다가 1563년(명종 18) 치사(致仕)를 청했으나 허락되지 않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전임된 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인품이 관후 인자하여 15년 동안 대신(大臣)으로 왕을 보좌하는 동안 조야(朝野)의 신망이 두터웠고 명상(名相)으로서의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