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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성서씨] 서경덕(徐敬德)

작성일 : 2017-08-22 17:01

1489 (성종 20) 1546 (명종 1)  ()는 가구(可久), ()는 복재(復齋), 화담(花潭), 시호(諡號)는 문강(文康), 부위(副尉) 호번(好蕃)의 아들. 가세가 빈한하여 독학으로 공부를 하여 13세에 「서경(書經)」을 읽고 복잡한 태음력(太陰曆)의 수학적 계산을 스스로 해득했으며, 18세에는 「대학(大學)」을 읽고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원리를 깨달았다.

1509(중종 4) 경기․ 영남․ 호남 지방을 유람한 후 산림(山林)에 묻혀 후진의 교육에 힘을 기울이던 중 1519(중종 14) 조광조(趙光祖)에 의해 현량과(賢良科)에 응시토록 추천받았으나 사퇴하고 학문연구에만 전심하다 병약한 몸을 치료하기 위해 1522년 속리산․지리산 등 명승지를 구경, 기행시(紀行詩) 수편을 남겼다.

1531(중종 26) 어머니의 요청으로 생원시(生員試)에 응시, 합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개성의 동문 밖 화담(花潭)에 초막을 지어 진리의 탐구에 전심, 이기론(理氣論)의 본질을 연구하여 우주 본질로서의 기()와 이()를 논하고, 기와 이의 상관 관계에서 천지만물이 형태화하며, 음양(陰陽)으로 분화(分化)한다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체계화했다.

인간의 죽음도 우주의 기에 환원(還元)된다는 사생일여(死生一如)를 주장함으로써, 노자(老子) 철학의 생사분리론(生死分離論)과 불교의 인간 생명이 적멸(寂滅)한다는 주장을 배격했다.

1544년 김안국(金安國) 등이 후릉 참봉(厚陵參奉)에 추천했으나 사양하고 계속 화담에 머무르면서 성리학(性理學)의 연구에 전심하고, 도학(道學)을 비롯하여 수학(數學)․역학(易學) 연구(硏究)로 여생을 보냈다.

황진이(黃眞伊)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逸話)가 전하며, 박연폭포(朴淵瀑布),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節)로 불린다. 개성의 숭양서원(崧陽書院), 화곡서원(花谷書院)에 제향(祭享), 1575(선조 8) 우의정(右議政)에 추증(追贈), 1585년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