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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변씨] 변치명(邊致明)

작성일 : 2017-08-22 16:50

공(公)의 휘(諱)는 치명(致明) 자(字) 성보(誠甫) 호는 묵포옹(墨逋翁) 숙종계유(肅宗癸酉) 六월 二十六일 장성군 장안리에서 출생하여 영조을미(英祖乙未)년에 향년(享年) 八十三세로 서울 적선동(積善洞)에서 졸(卒)하였다. 기틀과 국양이 넓어 문장(文章)을 일찍 깨우쳐 二十九세에 진사(進士)에 합격하였으나 여러차례 문과(文科)에 실패(失敗)하였다가 五十九세에 비로소 문과(文科)에 합격(合格)하여 승문원저작(承文院著作)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 예조(禮曹). 병조(兵曹).의조(吏曹).좌랑(佐郞).정랑(正郞).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평택현감(平澤縣監).개성경력(開城經歷).사복시정(司僕寺正).사헌부장영(司憲府掌令).시강원보덕(侍講院輔德).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한성우윤(漢城右尹).동의금부총관(同義禁府摠管).경연특진관(經筵特進官).지중추(知中樞).공조판서(工曹判書)를 역임(歷任)하고 정헌숭정(正憲崇政)을 거쳐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이르렀다. 회혼례(回婚禮)를 지내고 기로사(耆老社)에 드니 영조(英祖)의 예우(禮愚)가 다른 기신(耆臣)보다 특히 우대하였으며 효헌공(孝憲公)의 시호(諡號)를 내리시니 자혜애친(慈惠愛親)을 입증(立證)함이다. 어려서부터 가정지학(家庭之學)을 이어받아 학문(學文)이 대성(大成) 하였고 과거에 올라 창방(唱榜)하는 날 영조(英祖)가 불러 묻기를 경(卿)은 무엇으로써 나를 섬기겠느냐 물은즉 대답하기를 충성(忠誠)과 바른 정치(政治)를 할 뿐이라고 답(答)하니 영조(英祖)께서는 더욱 기뻐하시고 기로사(耆老社) 생시장(生侍狀)을 짓게 하였다. 지평사직소(持平辭職疏)를 올리면서 날로 강연(講筵)을 열어 흥학근정(興學勤政)의 방(方)을 힘써야 할 것과 무신역옥(戊申逆獄)의 처리방안(處理方案)을 논(論)하였고 개성(開城)에 재직시(在職時) 치적(治蹟)이 높았으므로 유수남태제(留守南泰齊)가 상소(上疏)하여 유임(留任)이 되고 백성들이 비(碑)를 세워 송덕(頌德)하였다. 장영(掌令)때에 언론개척(言論開拓)과 인재등용(人才登用)에 관(關)한 소문(疏文)을 올렸고 경연강의(經筵講義)에 임금을 깨우친바 적지 않았다.영조을미(英祖乙未) 十월 十四일 졸(卒) 하니 이조판서 관암홍 문정공경모(吏曹判書冠岩洪文貞公敬謨)가 시장(諡狀)을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