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肅宗)때 학행(學行)으로 천거 되어 지평(持平)을 지냈다. 일사청류당(逸士聽流堂)
휘(諱) 휴(烋)의 자는 미경(美卿)이시다. 행의와 학문(行誼와 學問)으로 천(薦)에 오르고 숭명제(崇明際)에 뽑혀 지헌(持憲)에 제수되기에 이르렀으나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공은 출생후 1년도 못되어 부모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구씨(具氏)에게서 자랐다. 10세에 문리(文理)를 깨우치고 엄연하기가 어른 같았다. 20세에 과거를 보려고 원재(院齋)에 머무실 때 「이 모임은 매우 성대하니 마땅히 경의(經義)를 강명(講明)해야지 자질구레하게 문장과 문구의 뜻을 캐는 짓을 하겠는가」하시니 여러사람이 이 말을 따랐다고 한다.
월여(月餘)만에 학문을 논하고 귀가하였다. 현석 박공(玄石 朴公)과 구천 이공(龜川 李公)등 제현과 왕복토론에 힘썻고 마음은 경(敬)으로 지니고 몸은 공(恭)으로 조심스럽게 하여 학문을 실천하는데 돈독하고 견해가 민첩한 것은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공(公)은 대소 향시에 수십번 합격하였으나 결국 크게 드러나지를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