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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변씨] 변덕윤(邊德胤)

작성일 : 2017-08-22 16:43

공(公)의 휘는 덕윤(德胤)이고 자(字)는 명보(明甫)이다. 高祖인 浩께서는 생원(生員)이시고 증조(曾祖) 차정(次楨)께서는 효렴(孝廉)으로 천거(薦擧)되어 참봉(參奉)에 제수(除授)되셨고 할아버지의 휘는 우(宇)이신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내셨고, 아버지의 휘는 復中이시다.
어머니 청송심씨(靑松沈氏)는 응신(應信)의 따님으로 만력(萬曆) 계사년 8월에 공(公)을 장내(墻內) 본가(本家)에서 낳으셨다. 공(公)은 어려서부터 품성(稟性)이 영매(英邁)하시고 효성(孝誠)과 공경(恭敬)함이 단정하고 곧았으며 명리(名利)를 대단치 않게 생각하셨다. 자라서는 이웃마을에 분가(分家)하여 살았으나, 정성(定省)(아침저녁으로 부모에게 문안드리는 것)을 폐하지 않으셨고, 상을 당해서는 시묘살이를 하면서 3년을 피눈물로 울었다. 일찍이 사계 김선생(沙溪 金先生)에게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을 배우고 당세(當世)에 추중(推重)을 받으셨다.
인조(仁祖) 병자년(丙子年)에 군정(軍丁)을 모집하고 군량(軍糧)을 모아서 근왕(勤王)하려고 서울로 달려갔으나, 중도(中途)에서 남한산성(南漢山城)의 강화가 이루어졌다는 말을 듣고는 미칠 듯이 통분해 하였다. 드디어 상소를 올리고 백암 명정산중으로 발자취를 감추어 호를 명산(明山)이라고 하고 문설주에 독명헌(獨明軒)이라고 현판(懸板)을 걸었으며 지천 최명길(遲川 崔鳴吉)이 여러번 천용(薦用)하려고하였으나 응(應)하지 않았다. 만년(晩年)에 부모님 묘소(墓所)에 다니기 가깝다 하여 고택(古宅)으로 돌아오셨으며
세상(世上)에서 려남처사(廬南處士)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