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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변씨] 변이중(邊以中)

작성일 : 2017-08-22 16:41

1546(명종1) ~ 1611(광해군 3) 자(字)는 언시(彦時), 호(號)는 망암(望菴), 택(澤)의 아들이며 장성 (長城)출신이다. 이이(李 珥)의 문인으로 1568년(선조 1)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73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하였으며 저서 심득(心得)에 심성이기본원론(心性理氣本源論)은 성리학의 정수가 담겨있다.

1592년 임진왜란때 전라도소모사(全羅道召募使)가 되어 병마(兵馬) 군기(軍器)를 수습한 뒤 수원(水源)에 주둔하여 기호(畿湖) 지방의 적에 대비했다.
조도사(調度使)가 되어 양천(陽川)에 주둔, 누차 전공을 세우는 한편 화차(火車) 3백량을 제조, 순찰사(巡察使) 권율(權 慄)에게 40량을 주어서 행주대첩(幸州大捷)을 이룩케 하고 조도사 (調度使)를 세 번, 독운사(督運使)를 두 번 지내면서 군량 수십만석을 거두어 조달하는 등 공이 많아 호성 원종공신 1등, 선무원종 공신2등의 공신록에 올랐다.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선생과 예학(禮學)을 논하였으며 가례고증(家禮考證) 4권을 저술하였고 해원 부원군 윤두수 선생 초상때 사계(沙溪) 선생과 더불어 집례 책임을 맡았다.
선생은 6조의 좌랑 몇 번이 행정 내부 고위직이었고 외직으로 이천(利川), 상주(尙州), 성주(星州) 풍기(豊基)고을 수령과 황해, 평안도의 도사(都事)등에 임명되었으나 극히 단기간이었고 함안군수를 끝으로 관직을 마쳤으며 고향 장성에 돌아와 향풍순화를 위하여 향헌20조를 만들어 공헌하였다.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追贈), 장성(長城)의 봉암서원(鳳巖書院)에 봉향(奉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