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1 15:29
1526년(중종 21) ~ 1593년(선조 26) 자는 경원(景瑗), 호는 회재(懷齋), 곤(鯤)의 아들. 이 이(李珥)의 문인. 1568년(선조 1)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내시교관(內侍敎官)․종부시 주부(宗簿寺主簿)를 지냈다. 1574년(선조 7)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고, 전라도·충청도의 도사(都事)를 거쳐 1579년 지평(持平)·예조 정랑(禮曹正郞) 등을 역임한 후 봉상시정(奉常寺正) 때 신병으로 사직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고향에서 의병을 모아 훈련시키는 한편, 군량을 수집하고 병기를 수선하여 도원수(都元帥) 권 율(權慄)을 도왔다. 이듬해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임명받아 병을 무릅쓰고 민심을 수습하고 흩어진 병사를 규합하던 중 죽었다. 광주(光州)의 의열사(義烈祠), 운봉(雲峰)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