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9 16:44
1552 (명종 7) ~ 1624 (인조 2) 초명은 홍로(弘老), 자는 응소(應邵). 1582년(선조 1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사관(史官)이 되고, 정언(正言)을 거쳐 1593년 교리(校理)로 전라도 어사(全羅道御使)가 되어 임진왜란 중의군량미 조달에 힘썼다.
1595년 응교(應敎)로서 시독관(侍讀觀)을 겸직했고, 우승지(右承旨)를 거쳐 충청도 관찰사를 지내다 이듬해 병으로 사직했다. 1597년 전라도 관찰사로 재임되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史)․대사성․도승지(都承旨)․병조 참판(兵曹參判), 다음해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1601년 호조 참판(戶曹參判)으로 진하부사(進賀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대사간․부제학․대사헌․첨지충추부사 등을 거쳐, 1607년(선조 40)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 1608년 선조가 죽자 빈전도감 제조(殯殿都監提調)를 지낸 후 1618년(광해군 10) 우의정(右議政), 이듬해 좌의정(左議政)에 올랐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삭직(削職), 이듬해 이 괄(李适)의 난 때 광해군 복위를 음모했다는 조카 윤장(允章)의 사건에 연좌, 심문을 받던 중 자살했다. 1691년(숙종 17) 신원(伸寃)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