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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박씨] 박신(朴 信)

작성일 : 2017-08-08 16:45

1362 (공민왕 11) 1444 (세종 26)  ()는 경부(敬夫), ()는 설봉(雪峰), 시호(諡號)는 혜숙(惠肅). 정몽주(鄭夢周)의 문인. 1385(우왕 11) 문과(文科)에 급제, 사헌부 규정(司憲府糾正)을 거쳐 예조·형조의 정랑(正郞)을 역임. 조선초 봉상시 소경(少卿), 감문위 대장군(監門衛大將軍) 겸 사헌중승(司憲中丞), 좌산 기상시(左散騎常侍)를 거쳐 대사성(大司成)이 되었다.

1399(정종 1) 형조 전서(刑曹典書)가 되고, 1400년 태종(太宗)이 즉위하자 승추부 좌부승지(承樞府左副承旨)로 발탁, 우대언(右代言대사헌(大司憲판광주목사(判廣州牧使), 1404년 개성 유후(開城留後), 한성 부윤(漢城府尹승녕부윤(承寧府尹)을 역임하였다.

1405(태종 5)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를 거쳐 다시 대사헌(大司憲)이 되어 언사(言事)로써 왕의 비위를 거슬려 아주현(牙州縣)에 귀양 갔다가 동북면 도순문찰리사(東北面都巡問察理使)에 가용되었다.

1407년 다시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공조 판서(工曹判書), 이듬해 서북면 도순문찰리사(西北面都巡問察理使)를 지냈고, 1409년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가 되었다.

뒤에 호조 판서(戶曹判書병조 판서(兵曹判書찬성사(贊成事이조판서(吏曹判書)를 역임, 다시 찬성사(贊成事)가 되고 1418년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다시 이조 판서(吏曹判書)가 되었으나, 선공감 제조(繕工監提調)로 있을 때 선공감 관리가 저지른 부정(不正) 사건에 관 련되어 13년 동안이나 통진현(通進縣)에 유배(流配), 1432(세종 14) 풀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