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찾기

조상찾기

HOME > 조상찾기

[목천장흥마씨] 마상규(馬湘圭)

작성일 : 2017-08-07 16:33

1905 (광무 9) 1966  ()는 해송(海松). 개성(開城)출신. 중앙학교(中央學校)을 중퇴, 1920년 보성학교(菩城學校)에 재학중 동맹휴학사건으로 퇴학, 이 무렵 문예지 여광(麗光)의 동인으로 문예활동을 시작했다.

1921년 일본에 건너가 일본대학(日本大學) 예술과에 입학, 홍난파(洪蘭波) 등과 극단 동우회(同友會)의 한 사람으로 국내 각지를 순회하며 연극을 통한 개화운동에 힘썼다. 이듬해 공진항(孔鎭恒) 등과 문학 클럽 녹파회(綠波會)를 조직하고, 1923년 송도소녀가극단(松都小女歌劇團)을 도와 지방을 순회하며 자작 동화를 구연(口演)했다.

이듬해 방정환(方定煥) 등과 색동회의 동인이 되어 많은 동화를 발표함으로써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해 끼꾸찌가 주재하는 일본 문예춘추사(文藝春秋社)에 입사, 편집장․선전부장을 지냈으며, 1930년 사재를 털어「모던 닛뽕」을 창간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송도 학술연구회 위원장․국장부 한국문화 연구소 소장․정훈국 편집실 고문 등을 역임하고 1951년 공군 종군 문인단(從軍文人團) 단장을 지냈다. 1957년 어린이 헌장(憲章)을 기초, 이듬해 천주교에 입교, 1959년 제6회 자유문학상을 수상(受賞), 이해부터 마을문고 보급회 명예회장이 되어 농촌의 독서 운동에 힘썼다.

1960년 대한소년단 이사, 1962년 서울특별시 시민헌장(市民憲章)을 기초, 1962년 고마우신 선생님 상, 1회 한국 문인협회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 세계는 초기의 탐미적 경향에서 점차 세태와 인정을 풍자 비판하는 방향으로 기울었으나, 항상 아동세계의 순화(醇化)와 보호를 염원하는 사상으로 일관했다. 장례는 문인장(文人葬)으로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