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4 14:27
1777 (정조 1) ~ 1861 (철종 12) 자(字)는 성백(誠伯), 호(號)는 정재(定齋), 진사(進士) 회문(晦文)의 아들. 남한조(南漢朝)의 문인. 1805년(순조 5)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지평(持平)․정언(正言)․문학(文學) 등을 거쳐 전라도 도사(全羅道都事)가 되었다.
1832년(순조 32) 홍문관(弘文館)에 발탁된 뒤, 승지(承旨)를 거쳐 1847년(헌종 13) 대사간(大司諫)․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하고, 1855년(철종 6) 호군(護軍)으로서 장헌세자(莊獻世子 : 사도세자)의 추존(追尊)을 청하는 소(疏)를 올렸다가 대사간 박내만(朴來萬)의 탄 핵을 받고 상원(祥原)에 유배, 이어 지도(智島)에 안치(安置)되었다가 이해 곧 석방, 1856년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1857년(철종 8) 제자들이 지어 준 뇌암(雷巖)의 만우재(晩愚齋)에서 후진들을 지도했으며, 1860년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