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4 11:42
1841 (헌종 7) ~ 1915 자(字)는 여성(汝聖), 호(號)는 의암(毅庵). 이항로(李恒老), 류중교(柳重교)의 문인. 1876년(고종 13)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을 체결할 때 문하(門下)의 유학생들을 이끌고 상소하여 이를 반대 하였고,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 김홍집(金弘集)의 친일내각(親日內閣)이 조직되자 의병을 일으켜 충주(忠州), 제천(堤川) 등지에서 싸워 부패한 관리를 죽였으나 관군에 패전, 단양(丹陽)으로 퇴거했다.
관군의 감시를 피해 만주 회인현(懷仁縣)으로 망명하여 은신중, 고종의 유지(諭旨)로 한때 귀국했다가 1898년(광무 2) 다시 만주에 갔다. 1909년(융희 3) 블라디보스톡에서 13도 의군도총재(義軍都總栽)에 추대, 이상설(李相卨) 등과 두만강 연안으로 쳐들어 오려고 기도 했으나 일본의 외교적 절충으로 러시아관헌에 피체, 뒤에 석방되어 1910년 한일 합방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 했다.
봉천성 관전현(奉天省寬甸縣)에서 병사했다. 한말이 거유(巨儒)인 이항로의 학통(學統)을 계승한 학자로, 문하에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