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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고성남씨] 남구만(南九萬)

작성일 : 2017-08-02 16:27

1629 (인조 7) 1711 (숙종 37)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미재(美齋), 시호는 문충(文忠), 현령(縣令) 일성(日星)의 아들. 송준길(宋浚吉)의 문인. 1651(효종 2)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656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이듬해 정언(正言), 1660(현종 1) 이조 정랑(吏曹正郞), 이어 집의(執義)․응교(應敎), 대사간․승지를 거쳐 1668년 안변부사(安邊府使)․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가 되고, 1674(현종 15) 함경도 관찰사로 유학(儒學)을 진흥시키고 변경 수비를 튼튼히 하였다.

숙종(肅宗) 초 대사성(大司成)․형조 판서(刑曹判書)를 거쳐 1679년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지내고 서인(西人)으로서 윤 휴․허견 등 남인(南人)을 탄핵하다가 남해(南海)로 유배되고, 이듬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이 실각하자 도승지(都承旨)․부제학(副提學)․대제학(大提學)․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했다.

1683년 병조 판서(兵曹判書)가 되어 폐사군(廢四郡)의 복치(復置)를 주장하여 무창(茂昌)․자성(慈城) 등의 2군을 설치했다. 이때 서인(西人)이 노소론(老少論)으로 분열되자 소론의 영수가 되었으며, 1684년에 우의정(右議政), 이듬해 좌의정(左議政), 1687년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1689(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득세하자 강릉(江陵)에 유배, 1694(숙종20) 갑술옥사(甲戌獄事) 때 다시 영의정에 기용되고, 1696년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1701년 희빈(禧嬪) 장씨(張氏)의 처벌에 대해 중형(重刑)을 주장하는 김춘택(金春澤)․한중혁(韓重赫) 등 노론의 주장에 맞서 경형(輕刑)을 주장하다가 숙종이 희빈장씨의 사사(賜死)를 결정하자 사직하고 낙향했다.

그 후 부처(付處)․파직 등 파란을 겪다가 서용(敍用), 1707(숙종 33) 치사(致仕)하고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문사(文祠)․서화(書畵)에도 뛰어났으며, 시조「동창이 밝았느냐」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숙종 묘정(廟廷)에 배향(配享), 강릉(江陵)의 신석서원(申石書院), 종성(鍾城)의 종산서원(鍾山書院), 무산(茂山)의 향사(鄕祠) 등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