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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고성남씨] 남이공(南以恭)

작성일 : 2017-08-02 16:01

1565 (명종 20) 1640 (인조 18)  초명은 이경(以敬), 자는 자안(子安), 호는 설사(雪簑), ()의 아들. 1590(선조2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 1593년 사서(司書)가 되고, 이어 평안도 암행어사(平安道暗行御史)를 거쳐 지평(持平)․정언(正言) 등을 역임했다.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이발(李潑)․정인홍(鄭仁弘) 등과 북인(北人)의 수뇌가 당쟁에 가담, 당시의 영의정(領議政) 류성룡(柳成龍)이화의를 주장했다 하여 탄핵, 파직시키고 1599년 북인이 분열될 대소북(小北)의 영수가 되었다가 류영경(柳永慶)과 함께 파면 당했다.

그 후 다시 기용되어 광해군(光海君) 초 형조 참의(刑曹參議)․예조참의(禮曹參議)․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등을 역임, 1615(광해군 7) 당쟁으로 파직된 후 평산(平山)․해주(海州)․송화(松禾)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1619년 풀려나와 대사헌(大司憲)․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 등을 거쳐 1637(인조 15)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승진, 이듬해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겸직, 1639년 다시 대사헌(大司憲)을 거쳐 공조판서(工曹判書)가 되었다가 앞서 청나라에 볼모로 보내게 된 왕제(王弟)와 대신들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보낸 사건에 책임지고 파면당했다. 죽은 후 관작이 복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