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2 16:00
1575 (선조 8) ~ 1648 (인조 26) 자는 적만(敵萬), 호는 시북(市北), 시호는 문정(文貞), 참판(參判) 응운(應雲)의 손자. 1606년(선조 39)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이듬해 사부(師傅)가 되었다가 세마(洗馬)․위수․통례(通禮)를 거쳐 1613년(광해군 5)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 (丙科)로 급제, 정언(正言)․수찬(修撰)․응교(應敎)를 지냈다.
인조반정(仁祖反正 : 1623) 후 오위장(五衛將)․황해도 관향사(黃海道館餉使)․안악 군수(安岳郡守)를 역임, 이듬해 이괄(李 适)의 난때 황주 수성대장(黃州守城大將)으로 도원수(都元帥) 장 만(張 晩)을 도와 공을 세우고 진무3등공신(振武三等功臣)에 춘성군(春城君)으로 봉해졌다. 병자호란(丙子胡亂 : 1636) 후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심양(瀋陽)으로 잡혀갈 때 우빈객(右貧客)으로 시종, 돌아와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고, 1646년(인조 24) 우의정(右議政)이 되어 민회빈(愍懷嬪) 강씨(姜氏)의 사사(賜死)를 반대하여 사직했다가, 1648년 좌의정(左議政)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