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2 15:33
1441 (세종 23) ~ 1469 (예종 즉위) 시호는 충무(忠武), 의산군(宜山君) 휘(暉)의 손자, 태종의 외손(外孫). 좌의정 권남의 4녀와 결혼, 1457년(세조 3) 17세로 무과(武科)에 장원,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가 북관(北關)에서 난을 일으키자 우대장(右大將)으로 이를 토벌, 적개일등공신(敵愾一等功臣)에 오르고, 의산군(宜山君)에 봉해졌으며, 이어서 서북변(西北邊)의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고 27세의 나이로 병조 판서(兵曹判書)가 되었다.
1469년 예종(睿宗)이 즉위한지 얼마 안되어 대궐 안에 숙직하던 어느날 밤 헤성(彗星)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이 깔릴 징조라고 말했다. 이에평소 그의 승진을 질투하고 있던 류자광(柳子光)이 이것을 엿듣고 역모를 꾸민다고 모함, 강 순(康 純) 등과 함께 주살(誅殺)되었다. 1818년(순조 18) 관작(官爵)이 복구(復舊)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