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2 14:59
자는 지숙(智叔), 시호는 충간(忠簡), 영의정 재(在)의 손자. 17세 때 음보(蔭補)로 감찰(監察)이 되었고, 세종 (世宗) 때 경상도 경력(慶尙道經歷)․지평(持平) 등을 역임하고 의성군(宜城君)을 습봉(襲封), 1435년(세종 17) 형조 참판(刑曹參判)으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대사헌(大司憲)․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형조 판서(刑曹判書),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지냈다.
1449년(세종 31) 우의정(右議政)을 거쳐 1451년(문종 1) 좌의정(左議政)이 되어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와 함께 단종(端宗)을 잘 보필해 달라는 문종(文宗)의 고명(顧命)을 받았으나 그 해에 풍질(風疾)로 벙어리가 되어 정사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딸이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아들 이우직(李友直)에게 출가,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안평대군 부자(父子)가 화를 당할 때도 풍질로 해서 화를 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