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2 14:47
1354 (공민왕 3) ~ 1398 (태조 7) 시호는 강무(剛武), 검교시중(檢校侍中)을번(乙蕃)의 아들 재(在)의 동생.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文科)에 급제, 우왕(禑王)때 사직단직(社稷壇直)으로 있다가 삼척(三陟)에 쳐들어온 왜구(倭寇)를 격퇴,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었다.
1388년(우와 14)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에 동조(同調)했고, 응양군 상호군(應揚軍上護軍) 겸 군부 판서(軍簿判書)를 거쳐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올랐다. 조 준(趙 浚)․정도전(鄭道傳)․윤소종(尹紹宗)․조 박(趙 璞) 및 형 재(在)와 함께 이성계 일파로 활약하다가, 1391년(공양왕 3) 정몽주(鄭夢周)에 의해 원배(遠配), 이듬해 정몽주가 살해되자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었다. 이어 정도전․조 준․조인옥(趙仁沃) 등 52인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을 개국케 하고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가 되어 개국1등공신(開國一等功臣)으로 의성군(宜城君)에 봉해졌으며,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겸 판상서원사(判尙書院事)․우군절 제사(右軍節制使)에 이르렀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과 함께 방원(芳遠 : 태조)에게 살해되었다. 태조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