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2 14:46
1351 (충정왕 3) ~ 1419 (세종 1) 초명은 겸(謙), 자는 경지(敬之), 호는 귀정(龜亭), 시호는 충경(忠景), 검교시중(檢校侍中) 을번(乙蕃)의 아들. 이 색(李 穡)의 문인.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후 좌부대언(左副代言)을 지내고 아우 은(誾)과 함께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여 조선개국에 공을 세웠다.
1392년(태조 1) 포상을 피하여 은거했으나 태조에게 처소가 알려져 재(在)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개국1등공신(開國一等功臣)으로 중추원 학사(中樞學士) 겸 대사헌(大司憲)이 되었으며, 의성군(宜城君)에 봉해졌다. 그후 판중추언사(判中樞院事)․참찬문하(參贊門下府事)를 거쳐 1396년 도병마사(都兵馬使)로서 쓰시마도(對馬島)를 정벌했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에 아우은(誾)이 살해됨과 함께 잠시 유배되었다가 혐의가 없어 다시 풀려나와, 1400년(정종 2) 세자사부(世子師傅)가 되었다.
후에 경상도 도관찰사(慶尙道都觀察使)․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를 거쳐 우의정(右議政)에 이르러 부원군(府院君)에 진봉(進封), 1416년(태종 16)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경제(經濟)에 밝고 문장이 뛰어났으며, 산수(算數)에도 능하여 당시 남산(南算)이라 불렀다. 태조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