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2 14:31
1661 (현종 2) ~ 1719 (숙종 45) 자는 기서(箕瑞), 호는 우암(寓菴), 상주(尙周)의 아들. 1687년(숙종 13)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693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했으나 벼슬에 뜻이없어 고향에 내려가 10여년간 은거, 형노명(老明)의 강권으로 전적(典籍)을 지내고, 1711년(숙종 37) 제주통판(濟州通判)으로 부임, 흉년에 도민 구호에 공을 세웠다. 뒤에 순천 부사(順天府使)를 지내고 다시 향리에 돌아가 풍류를 즐기다 세상을 떠났다. 순천에 동비(銅碑)가 세워지고, 제주의 죽림사(竹林祠)에 제향(祭享)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