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7-28 15:32
1427(세종 9) - 1498(연산군 4) 자는 자반 호는 보진재(保眞齋) · 천은당(天隱 堂), 시호(論號)는 문광(文匡),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 府事) 노물재(盧%J載)의 아들. 1451년(세종 33) 생원 (生員)이 되고 1453년(단종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집현전박사(集賢殿博士)가 되었다가 사가독서(賜H假謨[書)를 하였다. 그 후 지평(持平) , 문학(文學)을 거쳐 세조(世祖)의 총애를 받아 한 해 동안에 5품계를 특진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다. 도승지(都承旨) · 직제학(直提學)을 거쳐 1466년(세조 12) 발영시(拔英試) 에 장원 , 등준시(登俊試)에 2등으로 급제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듬해 호조판서(戶 曹判書)로서 대제학(大提學)을 겸직했다. 1468년(세조 14)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좌찬성(左贊成)이 되고 선성군에 봉군되었다가 선성부원군(宣城府院君)에 봉작 됐으며, 1471년(성종 2) 다시 좌리공신(佐理功臣) 3 등이 되어 좌찬성(左贊成)으로 이조판서(吏曹判書)를 겸직했고,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가 되어 「삼국사절 요(三國史節要)」를 편찬하였다. 70세에 사직을 원하였으나 불윤(不允), 궤장(凡丈)을 하사받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 갔다. 1487년(성종 8) 우의정(右議政), 1491년 좌의정(左議政), 1495년(연산군1) 3월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가 10월에 사직,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戊午士禍)때 훈구파(動舊派)의 중신(重臣)으로서 류자광(柳子光) 등과 김종직(金宗直)의 규탄에 동조했으나 사림파(士林派) 전부를 몰아내려는 데에는 홀로 반대, 많은 선비들을 구출했다. 학문에 조예가 깊어 세조 · 성종의 신망을 받아 세조 때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의 호전(戶典)을 편찬하고, 성종(成宗)때에는「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서거정(徐居正)과 함께 국역(國譯),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을 강희맹(姜希孟) · 양성지(梁誠之) 등과 편찬했다. 묘소는 노량진에 서 파주읍 백석리로 이장(移葬). 옛 신도비(原有)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