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7-28 15:17
1376 (우왕 2) - 1443 (세종 25) 자는 유린(有麟), 호는 효사당(孝思堂), 시호는 공숙(恭肅), 침의정승(ft議政丞) 척의 증손. 음보(藤補)로 등용되어 지사간원사(知司陳院事)를 거쳐 1403년(태 종 3)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고, 이듬해 이조전서 (吏曹典書)를 거쳐 경기도도관찰사(京畿道都觀察使)를 지내고 1405년 동지총제(同知抱制), 다음에 풍해도 도 관찰사(豊海道都觀察使) 등을 역임, 1408년(태종 8) 한성부윤(漢城府尹)에 이르렀다.
태종대왕의 동서로 이듬해 부인 민씨(閔民)의 남동생 민무구(閔無智) 형제의 사건에 연좌, 파직되어 14년간 양주에 은거, 1422년(세종4) 태상왕(太上王:태 종)이 세종(世宗)에게 그의 무죄를 밝힘으로써 한성부윤(漢城府尹)으로 복관(復官), 형조판서 (刑曹判書) · 참찬(恭贊) · 판한성부사를 거쳐 1432년 찬성사(贊成事), 1434년 찬성사(贊成事) 겸 대사헌(大司憲), 이듬해 우의정 등을 지내고 1437년 사직했다. 묘소는 노량진에서 1940년 庚辰에 파주읍 백석리로 이장. 옛 신도비(原有)있음. 교하노씨공숙공파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