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7-26 17:14
1682 (숙종 8) ~ 1759 (영조 35) 자는 중례(仲禮), 호는 청사(淸沙)․허주자(虛舟子), 시호는 충정(忠靖), 우의정 구(構)의 아들. 1710년(숙종 36)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수찬(修撰) 등을 역임했다. 1718년 동부승지(同副承旨)에 특진, 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했으며, 대사간․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가 되었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충주목사(忠州牧使)로 호서 안무사(安撫使)를 겸하여 난을 토평하는데 공을 세웠고,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로서 실록도청당상(實錄都廳堂上)을 겸직하여「경종수정실록(景宗修正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1740년(영조 6) 영의정(領議政)에 올랐으며, 1746년 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의 복관을 건의하여 신원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