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7-04 16:54
1479 (성종 10) ~ 1504 (연산군 10) 자(字)는 중설(仲說), 호는 읍취헌(揖翠軒), 한성부 판관(漢城府判官) 담손(聃孫)의 아들. 15세 때 이미 문장에 능하여 대제학 신용개(申用漑)의 눈에 들어 그의 사위가 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진사가 되고, 이듬해 18세로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 1498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승문원(承文院)에 발탁되었다가 홍문관(弘文館)의 정자(正字)․수찬(修撰)을 역임, 경연관(經筵官)으로 5년간 있으면서 류자광(柳子光)․성 준(成 俊)․이극균(李克均)의 죄상을 연산군에게 극언했다가 그들의 모함으로 투옥된 후 파직 당했다.
이때부터 산수를 주유하면서 문주(文酒)로써 소일, 독서에 열중하여 많은 책을 읽었고 1504년 지제교(知製敎)에 임명되었으나 이해의 갑자사화(甲子士禍)로 동래에 유배, 다시 의금부에 투옥되어 사형 당했다. 조선 5백 년의 으뜸가는 한시인(漢詩人)으로 일컫기도 한다
1506년(중종 2) 신원되고, 도승지(都承旨)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