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7-04 11:34
1571 (선조 4) ~ 1648 (인조 26) 자는 관옥(冠玉), 호는 북저(北渚), 시호는 문충(文忠), 목사 여물(汝岉)의 아들. 송익필(宋翼弼)의 문인. 1596년(선조 29)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 검열(檢閱)․강계 부사(江界府使)를 지내고, 1614년(광해군 6)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으며, 1623년 군사를 일으켜 광해군을 폐한 후 능양군(綾陽君:인조)을 왕으로 추대하여 정사일등 공신(靖社一等功臣)으로 승평부원군(昇平府院君)에 봉해지고, 병조판서 겸 대제학이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 때는 부체찰사(副體察使)로 인조를 강화(江華)에 호종했으며 환도한 뒤에 좌의정이 되었다가 1636년9인조 14) 영의정에 승진, 이해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扈從)했다.
1644년(인조 22) 심기원(沈器遠)의 모역(謨逆)을 신속히 평정한 공으로 영국일등공신(寧國一等功臣)으로 순천부원군(順天府院君)이 되었다.